풀은 장기에 걸쳐 가변적인 형태와 매체로 확장되는 동시대 미술의 작업생산방식을 고려하여 프로덕션 과정에서 벌어지는 연구, 토론, 해외 레지던시 체류, 스크리닝, pdf 프리젠테이션, 글, 서적 발간, 온라인 대화 등 작업 소개 방식과 형태를 다양화 하고자 합니다.

풀은 자체적으로 주관하고 주최하는 인하우스 전시사업 외에 국내외 미술기관, 사회단체, 작가, 독립기획자, 학교 등과의 협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동기획 프로젝트, 해외 레지던시 진출, 왭을 통한 컨텐츠 공유, 연계사업 등 외부 진출, 연계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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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페이스 풀
 
2018 풀 프로덕션 《눈은 구멍으로, 밤으로 들어가 먹히듯 몸이 되었습니다》
 
○ 전시명: 눈은 구멍으로 밤으로 들어가 먹히듯 몸이 되었습니다
○ 작가: 강동주 이미래 장서영
○ 기획: 김미정 신지이 안소현
○ 그래픽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아킨트
○ 기간: 2018년 5월 16일(수) ~ 6월 17일(일)
○ 오프닝: 2018년 5월 16일(수) 오후5시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1:00 ~ 18:00(매주 월요일 휴관)
○ 후원: 네이버 문화재단, 헬로 아티스트
 
 
*네이버문화재단은 헬로! 아티스트를 통해 시각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전시는 아트 스페이스 풀의 운영과 헬로! 아티스트
강동주, 이미래, 장서영 작가의 신작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본 전시의 오프닝 행사는 몰타맥주Cisk와 함께 합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세 작가와 ‘풀’의 세 큐레이터(김미정, 신지이, 안소현)의 경계도 질서도 없는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들은 신작을 준비하면서, 큐레이터 및 다른 작가들과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관심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외국어로 쓰인 글을 공유하기 위해 자동번역기를 이용하다 우연히 나온 오류의 문장이 모두를 사로잡았고, 그것을 전시에 맞게 다듬은 것이 제목이 되었다.
 
6인의 대화는 플로베르의 소설 『부바르와 페퀴셰』의 그것과 비슷했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진 부바르와 페퀴셰가 온갖 지식을 탐닉하듯, 6인은 웹플랫폼을 통해 시, 소설, 물리, 철학, 언어, 음악, 만화, 음식 등 분류불가능한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다만 플로베르는 이 소설에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백과사전”이라는 부제를 붙이면서 지식을 맹신하지만 이내 싫증을 내는 인물들을 희화화한 반면, 6인은 좀처럼 싫증을 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고, 애초에 진리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결국 이 대화의 기록은 “인간의 ‘이상함' 혹은 ‘비정상성’에 관한 백과사전"이 되었다.
 
6인은 공통적으로 신체 접촉, 반복되거나 지연되는 시간, 극복할 수 없는 거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마구잡이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강동주 작가는 신지이 큐레이터와 ‘몸’이 공간을 직접 지나간 흔적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신발을 닦아낸 티슈, 캄캄한 밤에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의 궤적을 반복해서 기록하여 전시한다. 이미래 작가는 김미정 큐레이터와 함께 ‘식욕’을  키워드로 한 대화에서 보어 페티쉬(vore fetish, 살아 있는 상태로 먹히거나 다른 생물을 먹는 것에 대해 환상을 품는 페티쉬)에 열광하더니, 내장을 연상하게 하는 조각들을 전시장에 풀어놓는다. 마지막으로 장서영 작가는 안소현 큐레이터와 가까워질 수 없는 이들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모니터의 액정과 이온 교환을 할 정도로 가까워진 사람의 이야기를 연예인 ‘팬픽’(팬이 쓴 픽션)과 성가곡의 형식을 빌어 전달한다.
 
요즘 전시는 작가와 기획자의 창조적 협력보다는 ‘성과의 물질적 가시화를 위한 효율적인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이번 전시는 전시라는 매체를 그것이 나타난 본래의 이유, 즉 사유의 새로운 질서의 발견과 무한한 확장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작가와 큐레이터가 웹문서를 통해 나눈 대화들은 효율적이지도, 반드시 작품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하고 서로의 상상력을 확장하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우연과 오류마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비정상 상태. 이 전시는 바로 그런 비정상적 에너지 과잉을 시각화한 것이다.    
 
안소현(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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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페이스
 
2018 풀 프로덕션 《오늘, 아무도 없었다

○ 전시명: 오늘, 아무도 없었다 
○ 작가: 권혜원, 기슬기ㆍ박은하, 이이내, 임소담, 정주원
○ 기획: 김미정
○ 그래픽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신익균
○ 기간: 2018년 3월 23일(금) ~ 4월 29일(일)
○ 오프닝: 2018년 3월 23일(금) 오후6시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1:00 ~ 18:00(매주 월요일 휴관)
 
*본 전시의 오프닝 행사는 몰타맥주Cisk와 함께합니다.
 
 
오늘, 아무도 없었다니, 꽤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건 넌센스다. 항상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 무언가는 한 번도 단순했던 적이 없다. 이미지, 꽤 거창한 언어와 논리, 이론들. ‘그것’은 다 함께 주제와 맥락을 만들었고, 이미지에 대한 이해와 설득을 보충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따라붙은 것들이 오히려 기획의 부실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작품의 경험을 방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넘쳐나는 곳이 여기다.
 
…무언가가 있음을 이토록 단호하게 주장하긴 했지만 순간 헛헛해진다. ‘그것’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사진이나 도록, 리플렛에 찍히고 기록되어 남겨지기는 한다. 그러나 한때 이곳을 채웠던 것들은 제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고, 세워졌던 가벽, 가구들은 무너뜨려질 것이며, 공간은 기록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늘 비고 차는 것이 반복되었던 곳이 여기다.
 
그런데 문득, 여기서 사라진(혹은 앞으로 등장할) ‘그것’의 역할과 임무는 무엇이었을지(무엇일지) 궁금해진다. ‘그것’들은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마치 ‘그것’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로 곡해될 것 같은데, 미리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게 우리에게 그렇게 새로운 일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그저 ‘그것’이 끝난 후 각종 폐자재가 넝마처럼 늘어진 장면을 볼 때 마다 역할과 임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뿐이다. 역할에 대한 질문은 작품을 포함한 모든 구성요소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언어까지 포함한다. 특히 언어는 ‘그것’이 작동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 때문에 작품은 설득력을 가질 때도 있고, 기이할 만큼 무의미해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빈 공간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다. 카오스니, 폐허니 하는 낭만적 감상 때문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사라지고 채워지는 과정의 반복,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이 결국 ‘그것’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후 잘 정돈된 언어들과 이미지, 많은 이들의 노동과 고민의 결과물이 곧 다시 현전할 것이다.
관객은 각종 인식/경험 체계를 열어놓고 거기에 놓인 텍스트와 정보들과 함께 공간을 배회할 것이다. 물음표를 안고 들어선 그곳에서 맞닥뜨린 인상들, 그곳에 놓인 작품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읽히지 않을 때의 막막함, 순간적 공감과 이해가 맞물렸을 때의 희열. 그렇게 관객은 하나의 공간에서 주어진 상황을 읽어가며 이해하고 인식해 나간다. 이 텍스트 또한 정보제공의 목적으로 비치된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그것’을 설명하려 노력하거나 논리적인 맥락을 구축하지 않는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작품과 공간에 대한 설명이 모호해진 풍경을 만들어낸 것은, ‘그것’와 ‘그것’ 사이의 빈 공간을 보면서 말끔히 사라지지도, 그렇다고 온전하게 존재하지도 않는 ‘그것’라는 매체에 대한 기억, 감각, 순간들을 추상적으로나마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이곳은 노출된 콘크리트 벽, 쌓인 폐자재, 가벽은 좁은 통로와 함께 마치 버려진 놀이공원처럼 분절되고, 연출된다.
 
사실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스스로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빛이 사라져야 존재를 발하는 대상을 스쳐 지나갔던 순간, 모르는 이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재현하는 신체와의 대면, 시처럼 보이는 글과 이미지의 모호한 관계, 주고받는다는 공평하면서도 반복되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허무한 실패, 예술 행위를 통해 사회가 정의 내린 성과를 증명하고자 하는 씁쓸한 노력의 단면 등은 앞서 언급한 사이의 빈 공간에서 감각했던 것들과 매우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의 여백에 관한 이야기를 덧씌워본다. 작품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명확한 메시지에 전혀 다른 맥락이 겹쳐진다면, 그 무대는 관객에게 어떻게 작동할까. 공감을 생성시키기보다 충돌하거나 생경하여 혼돈할 텐데, 그 혼돈은 곧 ‘그것’이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생소함과 맞닿는다.
 
결국 아무도 없다, 는 선언은 여전히 반어법이거나 거짓말처럼 들리며 혹은 기획자의 감상 섞인 자의적 해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여기는 여전히 무언가로 바글바글하지 않은가. 하지만 없다, 는 판단은 정말 없다는 실제의 상황일 수도 있고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일 수도 있다. 관객 중 누군가는 ‘그것’에 필수적인 것들이 없다고 비판하거나 작품과 ‘그것’의 주제와의 연결성을 찾지 못할(않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 의 주제나 기획의 언어를 차치하고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할 수도 있을 테다.
 
무엇이 좋은 ‘그것’이냐고 묻는 누군가의 질문을 통해 ‘그것’은 결국 완벽하게 사라지지 못하고 유령처럼 어딘가에 맴돌거나 불시에 호명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그것’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의 문을 열고 닫았을 때, 과연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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