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장기에 걸쳐 가변적인 형태와 매체로 확장되는 동시대 미술의 작업생산방식을 고려하여 프로덕션 과정에서 벌어지는 연구, 토론, 해외 레지던시 체류, 스크리닝, pdf 프리젠테이션, 글, 서적 발간, 온라인 대화 등 작업 소개 방식과 형태를 다양화 하고자 합니다.

풀은 자체적으로 주관하고 주최하는 인하우스 전시사업 외에 국내외 미술기관, 사회단체, 작가, 독립기획자, 학교 등과의 협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동기획 프로젝트, 해외 레지던시 진출, 왭을 통한 컨텐츠 공유, 연계사업 등 외부 진출, 연계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합니다.

CURRENT

*POOLAP은 풀 작가 지원 프로그램(Pool Artist Incubating Program)의 약자로, 2016년 시작된 풀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며, 본 프로그램과 전시는 작가 김정헌 선생님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전시명: 정글짐

○ 작가: 갈유라, 노혜리, 윤결, 이은희

○ 기획: 신지이

○ 그래픽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김형준

○ 기간: 2018년 12월 6일(목)~2019년 1월 13일(일)

○ 오프닝: 2018년 12월 6일(목) 오후 6시

   *노혜리 작가의 <세세리> 퍼포먼스가 12월 6일(목) 오후 6시 30분에 진행됩니다.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1:00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및 12월 25일(화), 1월 1일(화) 휴관


*주차가 불가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지이(아트 스페이스 풀 큐레이터)


예술이 무엇인지 밝히는 수많은 견해 중 최근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의 관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는 예술을 생물 진화론에 있어 중요한 ‘적응’이라 밝힌다. 예술이 다양한 유형이 허용하는 풍부한 추론에 대한 인간의 강렬한 욕구에 호소하는 인지 놀이이며, 보고, 듣고, 교류하는 등 인지의 중요한 양식들에 맞춰 정신을 다듬고 재조율하도록 우리를 자극해 그 강도 높은 훈련에 반복적으로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풀랩(POOLAP: Pool Artist Incubating Program)’의 지난 6개월은 서로 다른 시각언어와 사유의 결을 키워왔던 작가들이 풀이라는 공간에 모여 서로에게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서로의 작업을 탐색하고 다층의 비평을 공유하면서, 모두는 일시적이나마 활동들이 포개지고 또 확장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정글짐》은 이러한 물리적 인과를 전시의 얼개로 삼고자 한다.
정글짐은 입방체 모양의 철골을 종횡으로 잇고 쌓은 형태의 구조물이다. 그 위를 기어 오르내리게 함으로써3차원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도시의 제한된 신체활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점과 지형을 체험하도록 고안된 장치로,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이지만 도시 단조로운 움직임을 생각해보면 역동적이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사-축소-정글인 셈이다. 제목은 작품과 작품을 에두르는 여러 측면들이 교차하고 맞물려 있는 본 전시의 특성이 수많은 입방체가 포개어진 정글짐의 구조를 떠올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 속을 종횡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어졌다. 그리고 네 작가의 작품에서 주제와 재현 사이의 매개로써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신체’에 대한 탐구 또한 내포한다.
갈유라는 관습적 언어에 제약을 가한 상태에서 현재라는 순간이 지속하면서도 분기하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3막의 무언극과 비어있는1막이 교차된 영상을 보여준다. <날이 어두워져>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차를 마시는 등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행위는 곧이어 기둥 사이를 오가는 마임으로 변모하였다가, 마지막에 모든 서사가 배제된 몸짓으로 끝맺는다. 빛과 점으로만 이루어진 4막은 이 이야기의 영원한 순환을 암시한다. 인간이 신을 바라보던 방식에서 시작한 지난 작업에 이어, 신작은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단초로 하였다.
노혜리는 나무 합판, 주운 돌과 조개껍데기 등 우연히 발견하고 목적 없이 수집해둔 여러 일상의 물건들을 조합하고 변형하여 오브제를 만들며, 이들이 몸과 연계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해 왔다. <세세리>에서는 접혔다가 펼치고 또 세우는 것, 평면이자 입체가 되는 여러 형태들이 작가의 몸을 만나'먹는다'와'죽음'을 잇는 네 개의 장면으로 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꼬치요리의 부위들을 손으로 가리키는 영상이 사물에 투사되고, 손가락 하나가 없는 사람과 얼굴에 점이 있는 사람이 대사 속에 등장한다. 말과 행위가 조금씩 어긋나는 상황은 오브제가 형태에 담긴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도록 유도한다.
윤결은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유지되어온 불편한 관습 속에서 중년 여성의 은밀한 보상심리를 신체로 표현한 것에 주목해 이를 설치, 영상, 사진으로 풀어낸다. 기름진 파마머리를 연상시키는 전선줄에 큐빅핀이 흉터처럼 녹여져 있다(<빠른 걸음들>). 제왕절개 수술 자국을 드러낸 세 장의 사진은 희생과 헌신으로서의 모성이 아닌 지우고 싶은 어떤 흔적으로 그려지며(<여전히 가려운 곳>), 눈썹 문신을 하고 있는 여성의 대화 속에서 야릇하게 다가오는 생활의 관능미를 발견할 수 있다(<백세 시대>).
이은희는 기술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이미지와 데이터가 수집, 축적, 관리되는 과정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상충된 문제들에 의식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 <세 가지 벨트>는 디지털 이미지와 시각이 본래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하였다. 컴퓨터 시각 인식과 관계된 첨단 산업과 전형적인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신체 동작에서 평행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인터뷰를 교차시켜 상영한다.이를 통해 작가는 디지털 신체 이미지와 데이터의 생성을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면밀히 다룬다. 한편 인체의 내부를 드러내는 단층촬영(CT)대한 공상과 자전적인 이야기가 혼합된 흑백의 비디오 에세이도 함께 전시한다.
<정글짐>은 다층의 주제와 다색의 매체에 대한 질문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작가들의 현재 활동만을 조명하지 않으며, 비평문은 과거의 성취를 살피며 미래에 대한 기대로 채워져 있다. 넷의 이야기가 쌓고 이어져 모서리를 맞대고 있는 풍경은 시점과 동선에 따라 다양한 양태로 변모하며 새로운 함의를 증식해낼 것이다. 이들의 행보가 일시적이나마 교차된 이번 전시가 물리적 집합으로써의 귀결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탐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FORTH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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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

○ 전시명: 섬호광 A Lodestar
○ 작가: 금혜원
○ 기획: 신지이
○ 그래픽디자인: 강경탁(a-g-k.kr)
○ 공간디자인: 김형준
○ 기간: 2018년 10월 25일(목) ~11월 25일(일)
○ 오프닝: 2018년 10월 25일(목) 오후 6시
○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 관람시간: 11: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 후원: 서울문화재단
 
 
 

유물전유목遺物前游目[1]
 
신지이(아트 스페이스 풀 큐레이터)
 
 
가을이되니 담쟁이가 바스러져 가는 벽을 더 맹렬히 감춘다. 서까래에 뽀얗게 깔려있던 먼지가 아래쪽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며 이리저리 동요한다. 흙발에 지저분해진 바닥에 빛이 길게 드리우자 비로소 원래의 모습, 집의 모습을 찾았고, 드디어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며 작가는 복잡해했다.
 
누군가의 가족사나 자전소설을 읽을 때 예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여러 대에 걸친 가계도에서 당시 사회상을 엿보고, 삶의 이면과 성찰을 읽어내며, 종국에 그네들 인생의 기승전결이 어떻게 도래하는지 확인하길 기대한다. 금혜원이 펼쳐놓은 삼대의 이야기는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지만 예견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모계의 서사가 전쟁과 근현대사를 아우르며 단단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이야기는 선형적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작가는 인간관계를 세심히 다루면서도 사건을 마무리 짓는 데에는 짐짓 무심하다. 그리고 때때로 이야기가 심연에 빠져버리는데, 그것은 극 속에 작자 자신을 적극적으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오래된 테이블에 책이 세 권 놓여있다. 그들은 제각기 자전적 글쓰기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처음은 곧장 질러가고, 다음은 굴절하며, 마지막은 아주 커다란 원을 그린다. 첫 번째 ‘야행’은 작가의 외할머니가 작고하기 전 삶을 회고하며 쓴 6권의 노트에서 시작됐다. 금혜원은 조밀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손글씨 기록들에 역사적 증언들과 시대의 전형성을 보태고 자신의 상념을 틈입시켜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자전적 소설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책의 화자는 돌연 어린아이가 되어있다. 겨우 찾아온 평화를 누릴 새 없이 피난민들로 가득 차버린 부산 집에서, 제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층계참으로 숨어드는 아이는 작가의 어머니이다. 마지막 진술은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말하기로 결심한 작가의 몫이다. 단어와 물건을 세심하게 솎아내고, 기억을 되새김질하니 운문과 산문 사이의 글이 몇 편 나왔다. 아주 소소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밥을 지었고, 많은 것을 포기했으며, 그러는 중에도 내 자리를 요구했던.
 
벽에 걸려있는 옛 사진들은 1940년부터 1970년 무렵까지 찍힌 것들이다. 부엌, 피아노가 있는 방, 집 앞, 동물원 등 특별할 것 없는 장소들로, 보다 정확히는 그 공간들을 하나의 정물처럼 바닥에 놓고 재차 찍은 사진들이다. 작년 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 전시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사진들을 보았던 이라면 인물들이 빼곡한 사진들을 기억할 것이다. 누가, 어떤 사연으로, 어디에서 연루되었는지 소상히 적은 메모도 함께 있었다. 아트 스페이스 풀에는 ‘가족사진’이라 이름 붙은 ‘풍경사진’들이 걸려있다. 회색조의 빛바랜 사진은 익숙한 듯 하면서도 이질적인데, 그것은 아마 사진에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카메라가 상용화되기 이전이라 정보와 상징이라는 목적 없이 재미삼아 풍경을 찍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해보면 ‘풍경사진’이란 대단히 기묘한 장면인 것이다. 전시는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뉘어 있다. 한 축은 기억을 바탕으로 시간을 조밀하게 ‘채워’가는 글 작업이며 다른 하나는 특정 서사에서 기억을 ‘비워’냄으로써 시간을 길게 늘어트리는 사진이다. 금혜원의 <가족사진 시리즈>는 인물을 모두 지우고 빈 곳의 배경을 조심스럽게 복원해낸 조작된 사진이다. 누군가가 그곳에 존재했다는 너무나 온당한 사실이 삭제되자 마치 앞선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현존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니, 그러면서도 실은‘모든 기억’에 존재한다고 역설해 버린다. 누구의 집, 누구의 부엌, 누군가와의 추억에서 특정한 ‘누구’를 지우니 보는 이로 하여금 개개인의 어떤 기억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해 졌다. 주체의 자리에 불특정 타인의 임의의 기억들이 스며들 틈이 생긴 것이다. 이는 ‘나’, 개인이라는 작은 테두리로 이야기가 환원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수평적이며 비선형적으로 확장된 하나의 세계로 가족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는 아주 농밀한 가족의 서사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인물들이 희석되어 가더니 급기야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린다. 전시장 곳곳에 40년은 족히 되는 가구들과 물품들이 자리해 있다. 모두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다. 물건들에도 말과 기억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세상에는 책도 그림도 영화도, 재현이라 불리는 그 무엇도 필요 없을지 모르겠다. 그저 귀 기울이면 온갖 풍요로운 미시사에 세상은 터져버릴 테니까. 경험을 소설로 재구성한 작가는 그것을 전시장에 놓아두는 한편, 곳곳에 ‘목소리’로도 숨겨 두었다. 처음 할머니의 삶을 구전으로 들었을 그때의, 고목의 기억에 공명하는 아이처럼.
 
지난 2년간 작가는 지난한 리서치의 과정을 보냈다. 강박에 가까운 고증을 통해 재구성한 이야기는 사건과 사고(思考)들의 연쇄로 가파르게 70여 년의 세월을 훑는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것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간에, 감동을 주거나, 고통을 주기에 이야기에 매료되어 듣고 읽는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단순히 매료나 사랑으로 설명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이 가족과 자신의 내밀한 부분의 발설이 전제된다면 더더욱. 미셸 레리스Michel Leiris는 자신의 자서전 『성년(L’Age d’homme)』의 서문에서 글쓰기를 투우에 빗대어 말한다. “(황소의) 뿔이 내포하는 구체적인 위협 때문에 투우사의 기교에 유일하게 인간적인 현실을 부여하며, [...]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탁월해질 수 있는 기회를 끌어내는 투우사, 가장 위험한 순간에 자기 스타일의 장점을 모두 보여주는 투우사”가 그가 감탄하고 되고 싶은 것이라 말한다. 물론 금혜원의 이야기가 황소의 뿔처럼 어떤 구체적인 위해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리스가 짚어내 듯) 책을 낸다는 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그를 바라보는 방식이 전과는 더 이상 같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일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앞서 금혜원의 이야기를 두고 소소하다 표현하였지만, 결코 이야기가 소박하다거나 평범해서 썼던 말은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풍파와 격정들이 예삿일로 여겨질 만큼 너무나 나의, 우리의 여인들에 대한 얘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선택과 그로 인한 성장의 근거를 가족으로부터 추적해 들어가는 많은 서사들에서 유독 모계에서 당위를 찾거나,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발화된 매체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1]장파(張法)는 그의 저서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에서 ‘보기’라는 대상 인식의 방식으로 눈 돌리기(유목游目)와 초점(焦點) 맞추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 돌리기에는 사람과 시각의 ‘움직임’이 포함된다. “한걸음 한걸음 옮기면서”, “면면을 살피기”를 통해 우주를 획득하고 우주를 획득함으로써 자아를 획득하고자 하는것이 동양의 방식이다. 반면 초점 맞추기는 고정된 위치에서 고정되어 있는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서양의 방식이다. 이는 사물을 감상하는 최적의 시점을 찾는 적합성의 과정이지만 어떤 사물은 절대 명료하게 보지 못한다는 ‘허무’를 포함한다고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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