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 프로젝트는 60대 중반을 넘긴 미술작가 김정헌이 유신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를 위해 교육적 목적으로 희곡 한 편을 집필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정헌은 80년대 현실주의 계열 미술작가들의 작업그룹이자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실천 미학과 현실 비판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현실과 발언’(1980-90) 동인의 좌장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가 집필한 희곡 ‘꿀꺽꿀꺽 낄낄낄 - 유신의 소리’는 괴테의 파우스트 형식을 패러디하여 故 박정희 대통령이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이승을 둘러보러 내려오는 내용의 1막 3장짜리 희곡으로서, 전시 제목은 김정헌 자신의 2003년 作 ‘박정희와 유신이 내던 소리’에서 따왔다. 이 그림은 작가가 유신시대를 소리로 표현하여 화면 중앙에 검은 색안경을 낀 대통령을 말 풍선으로 처리하고 당시 체제의 피해자들이 냈을 법한 고문과 통곡의 소리들을 화면 곳곳에 써넣은 작품이다. 그는 극중에서 환청에 시달리는 박정희를 빌어 유신에 대한 배경 설명과 함께 그림에 글자로 씌어져 있었던 소리들을 실제 음향으로 들려주고자 희곡 형식을 시도했다.

 

이 계몽적인 풍자극은 연출가 윤한솔의 손에 의해 한층 복합적이고 체감적인 상징극으로 구현된다. 유신의 온갖 거슬리는 음향 효과들 속에서 연극의 형식은 소리의 파장이 그러하듯 해체적으로 느슨하게 풀려간다. 배우들이 장소를 이동하고, 악령과 박 대통령으로 분한 배우가 서로 역할을 교환하고, 이승∙저승을 상징하던 전시장 실∙내외가 순간 뒤바뀌기도 하고, 노장 화가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를 극 상에서는 박정희 기념관이라 일컫기도 한다. 심지어 프롬프터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자원하는 관객들이 배우를 대신해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을 나누어 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물, 배우, 관객, 장소, 지시물에 대한 고정 프레임이 비틀어지고 유동적으로 흐르면서 연극은 무대 위의 장면을 보는 방식에서 현실에서 퍼져가는 체감의 장이 된다.

흔히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 체험자로부터 구술사와 경험담을 듣는다. 그러나, 그 역사와 현재, 타인의 서사와 나의 현실 사이에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할 때는 과거와 증언 모두에 거리감이 생기기도 한다. 관건은 관객이 자신 안에 있는 모종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증언자와 청자, 과거와 현재, 타인의 이야기와 관객의 실제 간에 고정된 자리, 시점, 관계를 허무는 것이다. 소리는 이 때 개방과 연결, 확산의 메커니즘을 끌어가는 주요 모티브가 된다. 프로파간다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소리가 증언을 체감, 사유하게 만드는 역전술의 단초가 되는 순간이다. 연극에서 박정희와 악령, 두 역할을 연기하는 김정헌을 만날 수 있다.